소신은 미치도록 승리하고 싶사옵니다.
눈앞에 강조가 붙잡혀있지만 전열은 이미 무너졌기 때문에 수습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퇴각합니다.
김훈
통군사 전방에서 적의 대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어서 퇴각해야 합니다. 이미 전열이 무너졌습니다! 통군사!
최사위
그래.. 알겠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단독행동을 한 야율분노에게 정말 분노하는 소배압입니다.
소배압
선봉도통. 너 지금 무슨 짓을 벌인 거냐! 왜 내 허락도 없이 단독으로 기습을 감행한 거냐.
야율분노
왜 이러십니까? 적장을 생포하지 않았습니까? 그 덕에 도통께서 무너뜨리지 못하던 검차진도 하루아침에 무너트렸습니다. 이만하면 흥화진 따위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대승입니다!
소배압
닥치지 못할까! 적을 쫓아 버리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전멸시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란 말이다. 우리 거란군은 벌판에서 만난 적을 전멸시키지 못한 적이 없다. 헌데 너는 기껏 벌판에 모여 있던 적을 모두 달아나게 만들었단 말이다. 하루만 더 공격했어도 전멸시킬 수 있었던 적을! 모두 흩어지게 만들었단 말이다. 이제 적병들은 성안으로 들어가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을 거다. 네가 함락시키지 못한 저 흥화진처럼 말이다!
야율분노
그러나 강조를 잡았지 않았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바라시던대로 역신 강조를 손에 넣었단 말입니다!
소배압
그럼 황제 폐하께서 이제 전쟁을 끝내시고 철군을 하셔야 되는 거냐? 폐하께서 원하시는 건 강조가 아니다. 이 고려를 완전히 정복하시는 것 그것도 모르겠느냐?
통주성에는 패잔병들이 무작정 도망칩니다.
최질
너희들은 뭐 하다가 이제 들어오는 거냐! 코앞에 있는 통주성도 못 찾고 어딜 헤매다 오는 것이야!
군사
송구하옵니다. 무작정 도망치다 보니 어디가 어디인지 살필 겨를이 없었습니다.
최질
이런 식으로 퇴각하는 군대가 세상 어디 있단 말이냐!! 진격보다 중요한 게 퇴각이란 것도 모르느냐? 기병한테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모르냐는 말이야? 성문을 열어라!
별장
성문을 이제 닫아야 합니다. 언제 거란의 대군이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최질
패잔병 한 놈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 전투할 태세만 갖추고 성문은 닫지 마라. 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됐다는 말이냐?
무너진 전열을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김훈
곧 적의 추격병들이 당도할 겁니다. 저는 여기서 군사들을 데리고 거란 놈들의 추격을 막겠습니다. 통군사께서는 남쪽으로 도망친 군사들을 따라잡아서 그들을 수습해 주십시오. 가까운 곳에 있는 군사들은 곽주로 보내시고 나머지는 서경성으로 데려가서 다지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시오.
통군사
그래 알겠네..
김훈
그래고 개경에 있는 황제 폐하께 전령을 보내주십시오. 고려군이 참패했다고..
개경의 백성들에게 고려군이 참패했다는 소식을 그대로 알려야 한다는 현종과 알리지 말아야 한다는 강감찬이 서로의 의견이 부딪힙니다.
현종
그럼 궐 밖에 백성들에게는 뭐라고 말해야겠소? 승전보도 내 입으로 전했으니 패전의 소식도 내가 전해야겠소. 그게 도리인 것 같소.
강감찬
그럼 개경의 백성들이 동요할 것이옵니다. 이번에는 함구하시옵소서.
현종
함구하라니..? 전에는 나에게 백성들과 함께하라고 하지 않았소. 헌데 이번엔 어찌 그들을 속이란 말을 하는 거요?
강감찬
폐하 소신이 일전에 백성들과 함께하시라고 말씀드린 것은 그것이 승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사옵니다. 이번에는 함구하라고 말씀드리는 것 또한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함이옵니다.
현종
전승을 바라는 마음은 나 역시 절실하오. 허나 그것을 위해서 백성들에 대한 신의를 버린다면 자칫 승전보다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소.
강감찬
폐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사옵니다. 황제가 백성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선정은 외적을 격퇴하여 백성들의 터전을 수호하는 것이옵니다.
현종
그럼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어찌해야 하는 것이오? 이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우리 고려는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하오. 헌데 이미 황제와 백성 간의 신의가 무너져 있다면 무슨 힘으로 이 나라를 재건하고 지탱해 나갈 수 있단 말이오.
강감찬
그건 승리한 다음에나 생각할 문제이옵니다. 지금 그것까지 챙기시는 것은 폐하의 욕심이시옵니다.
현종
뭐요?
강감찬
지금은 부디 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하시옵소서.
현종
백성에 대한 신의를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소. 아니! 오히려 그런 승리가 더 값진 승리일 것이오. 헌데 경은 어찌하여 그 중요한 것을 전승의 재물로만 생각하는 것이오?
강감찬
폐하! 승리하기 위해 치른 대가가 아무리 크다 해도 패배한 다음에 겪는 고통에는 절대로 미치지 못하는 것이옵니다.
현종
패전의 고통이 그 아무리 극악하다 하여도 황제와 백성 간의 신의만 살아 있다면 이겨내지 못할 것은 없소!
강감찬
그건 폐하께서 전쟁을 너무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옵니다! 폐하께서 막연하게 생각하시는 것보다 천 배, 만 배 더 고통스러운 것이 전쟁이옵니다. 인간이 살아서 겪는 유일한 지옥이 바로 전쟁이란 말이옵니다! 폐하께서 지금 당장 솔직하게 패전의 소식을 전한다면 놀란 개경의 백성들이 서둘러 피난길에 오를 것이옵니다. 그럼 남도의 백성들까지 두려움에 휩싸여 도망칠 것이옵니다. 그럴 때 전장에서 군사들을 더 보내달라 청해 오면 어찌하시겠사옵니까? 후방이 다 무너져 내렸는데 무슨 수로 전장의 장수들을 지원하실 것이옵니까! 폐하께서 지키려는 백성들과의 신의가 오히려 백성들을 지옥에 빠트릴 수도 있사옵니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옵니다. 제 아무리 숭고한 가치도 승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은 가차 없이 버려야 하는 것이옵니다. 그러고도 이기기 힘든 것이 바로 전쟁이옵니다! 폐하... 부디 승리만을 생각하시옵소서. 소신도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야율융서(거란 성종)는 강조를 회유하고 안되자 잔인하게 죽입니다. 다른 장수들은 회유에 넘어가네요.
야율융서
고개를 들라. 그대가 강조인가?
강조
그렇다.
야율융서
듣던 대로군. 네가 아주 잘 싸웠다고 들었다. 짐은 너와 같은 장수가 항상 필요하다. 어떠냐? 이젠 짐을 위해 싸워보겠느냐?
강조
난 고려의 신하다!
야율융서
다른 자들도 모두 마찬가지인가? 모두 죽음을 바라고 있는가?
현운
아니옵니다! 폐하께서 받아만 주신다면 이제 고려를 잊고 새 황제 폐하를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이옵니다. 새 일월을 본 자가 어찌 옛 산천을 그리워하겠사옵니까! 부디 폐하의 신하로 받아 주시옵소서!
야율융서
너희들은 어찌할 것이냐? 어서 답하라!
고려 장수들
따르겠사옵니다!
야율융서
한 번 더 묻겠다. 너의 용맹함 때문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답해 보거라. 나의 신하가 되겠느냐?
강조
왜 또 묻는 것이냐? 대 거란의 황제가 어찌 이리 구차하게 구는 것이냐! 어서 죽여라! 도끼나 휘두르는 야만인의 신하가 되느니 사지가 찢어발겨져도 고려의 신하로 남을 것이다. 이 반역자를 믿고 대군을 맡겨 주신 고려의 황제 폐하를 위하여 죽어도 영원히 충성을 다할 것이다!
야율융서
야만.. 야만...
현종은 강조 처에게 직접 이 소식을 알려줍니다.
현종
긴히 전할 말이 있어서 불렀소.
강조 처
예. 말씀하시옵소서.
현종
좋지 못한 소식이오. 도통사가 거란군에게 잡혀 갔소. 고려군도 패배하여 여러 성으로 흩어졌소. 내 그대에게만은 전해야 할 것 같아 이리 불렀소.
강조 처
예, 폐하. 이리 친히 전해주셔서 감사하옵니다.
현종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소.
강조 처
아니옵니다. 패전의 소식을 전하여 송구하옵니다. 허나 도통사도 사력을 다했을 것이옵니다. 부디 그것만은 알아주시옵소서.
현종
걱정하지 마시오. 내 어찌 그걸 모르겠소. 도통사는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웠소. 이 고려를 위해 최선을 다했소.
강조 처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통주성]
최질
장군. 무사하셨습니까? 헌데 완항령을 지키신다고 들었는데 어찌 오신 겁니까?
김훈
더는 추격병들이 나타나지 않길래 이쪽으로 왔네. 놈들이 다시 공격을 시작하면 이 통주성부터 노릴 것 아닌가?
최질
예. 그렇지요. 잘 오셨습니다. 우리 통주성이 천군만마를 얻었군요.
김훈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네.
최질
포로로 잡혀간 장수들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김훈
거란 진중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찌 알겠는가? 허나 이거 하나만 확실할 걸세. 살아남으려면 거란 황제의 신하가 돼야 할 거네. 고려를 버리겠다 맹세하고 거란 황제 발아래 엎드려야 할 걸세.
최질
그 말은 결국 살아남은 자가 반역자군요.
김훈
그리되는 거지.
거란 측으로 돌아선 이현운은 완벽히 거란 사람이 되기로 하였네요.
현운
부탁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소. 항복을 권하러 가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켜 주시오. 고려의 장수들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오.
한기
거 시키는 대로 하시오. 공은 귀빈으로 있는 것이 아니오. 폐하의 신하로 있는 것이오.
현운
저 사신으로 다녀오는 것보다 더 나은 걸 드릴 수 있소. 고려의 성들을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알려드리겠소. 다른 곳은 몰라도 곽주와 영주는 약점이 확실한 곳이오. 내가 그걸 알려주겠소.
현운
통주성은 6위 소속의 정예병들이 많아서 쉽게 함락되지 않을 겁니다. 거기에만 매달리는 것보다는 여러 성을 동시에 공격하는 게 더 나을 겁니다. 곽주성의 방어사와 영주성의 안북 도호부사는 심약한 자들입니다. 공격이 시작되면 둘 다 도망칠 겁니다. 남은 자들끼리 성을 지키며 응전한다면 곽주는 이곳이 약점입니다. 성벽이 제일 낮은 곳입니다. 반대편 성문을 공격하면서 군사들이 그쪽으로 몰리게 만든 다음에 이곳으로 침입하면 쉽게 무너질 겁니다.
소배압
그 정도는 곽주성의 장수들도 알고 대비할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는가?
현운
곽주성은 낡은 초가가 많아 화재에 취약합니다. 화공을 동시에 가하면 금세 혼란에 빠질 겁니다.
이현운의 정보로 인해 영주성의 도호부사는 성을 버리고 도망가 금방 함락되고 곽주성 역시 함락됩니다.
이러한 전령이 개성에 당도하자 최항은 강감찬에게 친조를 하자고 합니다.
항
예부시랑. 어디 가는 길이오?
강감찬
전령이 당도했다 하여 궐로 들어가는 중이옵니다.
항
그전에 나 좀 봅시다.
강감찬
전령이 당도했다 하옵니다. 일단은 무슨 일인지부터 확인하겠사옵니다.
항
무슨 내용인지는 내가 이미 알고 있소. 내가 전해 줄 테니 따라 오시오.
강감찬
그럼 이제 서경만 남은 것이옵니까?
항
그렇소. 서경만 함락되면 적들이 곧 개경으로 몰려올 거요.
강감찬
헌데 왜 저를 따로 부르신 겁니까? 어서 폐하를 모시고 대책을 마련해야지요.
항
그전에 강 공에게 따로 해야 할 말이 있어서요.
강감찬
무슨 말씀이신데 그러시옵니까?
항
강 공. 공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 역시 고려를 위하는 사람이오.
강감찬
그걸 제가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제가 비록 영공께 불손한 언행을 할지언정 영공의 충심을 의심한 적은 없사옵니다.
항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려. 그럼 본론을 얘기하겠소. 강공 이제 항복해야 하오.
강감찬
항복이라니요? 그 말도 안 됩니다.
항
무조건 항복하자는 말이 아니오. 화의를 청하고 협상을 시작하잔 말이오.
강감찬
그게 그거 아니옵니까! 침략자들과 마주 앉아 협상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승리를 포기하는 것 아니옵니까! 그럼 저들에게 짓밟힌 고려의 영토는 어찌 되는 것이옵니까? 저들에게 사로 잡힌 고려의 백성들은 어찌 되는 것이옵니까! 영공. 고려는 아직 싸울 힘이 남아 있사옵니다. 흥화진이 건재하고 귀주와 통주성도 건재하옵니다.
항
예. 압니다. 그래서 지금 항복해야 한다는 거요. 항복은 싸울 힘이 남아 있을 때 해야 하는 것이오. 고려군이 다 전멸한 다음에는 우리가 항복을 청해도 저들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요. 안 그렇소? 거란 황제가 원하는 것은 고려의 굴복이오. 자신이 직접 군대를 통솔하여 고려를 굴복시켰다는 명성이오. 그래서 이제는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한 거란의 황제가 되었음을 온 천하에 과시하는 것이오. 우린 그 욕심만 채워 주면 되는 것이오. 더 이상 피를 흘릴 필요는 없소.
강감찬
그 욕심이 고작 곽주와 영주를 함락시키는 것으로 채워지겠사옵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지금 고려가 사신을 보내 항복한다고 해서 거란군이 순순히 물러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항
성상 폐하께서 직접 가시면 될 것이오.
강감찬
뭐라고요?
항
성상 폐하를 설득하여 거란 황제에게 친조를 청할 것이오. 성상 폐하께서 직접 거란주의 발아래 엎드려 신하로서의 예를 보이신다면 그 욕심이 채워질 것이오
강감찬
그것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그건 항복보다도 더한 치욕입니다!
항
아오! 내가 그걸 어찌 모르겠소. 허나 지금은 그것밖에 방법이 없소. 좌복야가 성상 폐하께 친조를 주청 드릴 거요. 예부시랑도 그때 힘을 보태주시오. 폐하께서 요즘 예부시랑을 무척 신뢰하고 계신 걸 잘 아오. 그래서 하는 말이오. 강공 나 역시 참담하고 비통하오. 분하고 억울하오. 허나 백성들이 죽어가고 있소. 우린 어떻게든 이 전쟁을 멈춰야 하오! 제발 따라 주시오. 부탁합니다.
신하들은 친조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현종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강감찬은 안받아들일 거라 생각하고 물어보는데 그 역시도 친조를 해야한다고 말을 합니다.
현종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친조를 청하라니? 항복이라니! 아직도 서북면의 여러 성이 분전하고 있소. 동북면의 군사들도 건전하오. 헌데 어찌하여 벌써 항복을 입에 올린단 말이오!
항
폐하 아직 고려의 군사들이 남아있을 때 협상을 시작해야 하옵니다. 싸울 군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는 저들과 마주 앉을 기회조차 없사옵니다.
충순
송나라도 아직 군사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거란과 전연의 맹을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전란을 멈출 수 있었기 때문에 송의 백성들이 그들의 터전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진
폐하 소신들이 항복을 주창한다 하여 소신들을 반역자로 여기지는 마시옵소서.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을 막아보려는 것이옵니다.
충순
폐하 백성들을 생각하시옵소서. 이대로 전쟁이 계속 이어진다면 더 많은 고려의 백성이 참살당할 것이옵니다. 더 많은 고려의 강토가 폐허로 변할 것이옵니다. 여기서 전란을 멈춰야 하옵니다.
항
폐하 소신들도 폐하만큼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옵니다. 허나 이것이 위정자의 책무이옵니다. 자신이 굴욕을 감내해서라도 백성을 지켜야 하는 것이 폐하와 소신들의 의무이옵니다. 부디 이 점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현종
정녕 그것밖에 없소? 그것만이 백성들을 위하는 길이란 말이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없소? 모두 같은 생각이오? 단 한 명도 계속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거요? 예부시랑! 경이 말해보시오. 경은 어찌 생각하오?
강감찬
재상들의 말이 맞사옵니다. 친조를 청하시옵소서. 소신이 직접 친조를 청하는 표문을 적겠사옵니다.
재상들이 물러나고 강감찬과 단 둘이 이야기를 하네요. 강감찬의 친조는 재상들의 친조와는 다른 의미였습니다.
현종
다시 말해보시오.
강감찬
친조를 청하시옵소서. 그래야 이기실 수 있사옵니다. 곽주와 영주가 너무 빨리 무너졌사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서경이옵니다. 허나 서경을 지키려면 동북면의 군사들이 필요하옵니다.
현종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강감찬
적을 기만하자는 것이옵니다. 적을 속여 시간을 벌고 그 사이에 반격을 준비하자는 말이옵니다. 거란의 황제에게 친조를 청하시옵소서. 그럼 거란의 황제는 고려가 굴복했다 생각하여 진군을 멈출 것이옵니다. 그 사이에 동북면의 군사들을 서경으로 이동시켜 서경을 지키게 하는 것이옵니다.
현종
친조를 청하는 순간 우리 고려는 항복하는 것이오. 헌데 친조를 청하여 놓고 군사를 이동시킨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오?
강감찬
고려는 단지 친조를 청했을 뿐이옵니다. 말 그대로 고려의 군주가 거란의 군주를 직접 찾아가겠다고 했을 뿐이옵니다. 친조를 청하는 표문 어디에도 '항복'이라는 글자는 들어있지 않을 것이옵니다.
현종
그게 무슨.. 그럼 친조 하겠다는 약속은 어찌하겠다는 거요?
강감찬
날짜를 못 박지 않은 약속이옵니다. 구속받으실 필요 없습니다. 친조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옵니다. 폐하께서 거란주의 발아래 엎드리시면 그 순간부터 폐하는 거란주의 일개 신하가 되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우리 고려는 자주적인 황제의 나라가 아니라 거란의 속국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옵니다.
현종
그럼 거짓 약속을 하란 말이오? 정말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이오? 아무리 적국과의 관계라고 해도 외교에는 최소한의 신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오?
강감찬
신의를 먼저 저버린 것은 거란이옵니다. 어린아이도 비웃을 명분을 내세워 이 고려를 침략해 온 것이 바로 저들이옵니다. 그런 자들에게까지 공명정대한 외교를 펼칠 이유는 없사옵니다.
현종
경의 이런 생각을 다른 재상들도 알고 있소?
강감찬
모르옵니다.
현종
그럼 재상들까지 속인 것이오?
강감찬
예 폐하. 지금은 논쟁을 벌일 시간조차 없습니다.
현종
경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려. 경의 뜻은 이제 잘 알았소. 헌데 그럼 이 일은 누구한테 맡겨야 하는 것이오? 적진에 들어가 적국의 황제를 기만해야 하는 것이오. 누구한테 이 위험한 일을 맡겨야 하오?
강감찬
소신이 가겠사옵니다. 소신이 직접 표문을 지어 거란의 진중으로 가겠사옵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현종
대체 경은 어떤 사람이오? 처음에는 아버지처럼 자상한 늙은 신하였소. 그다음에는 바른말하기 좋아하는 고집쟁이 신하였소. 헌데 이제 보니 승리에만 미쳐 있는 강인 같소..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승리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적진으로 향하는 강감찬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강감찬
예. 폐하, 맞사옵니다! 소신은 미치도록 승리하고 싶사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고 싶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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