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훈
내가 아무리 돈이 없어도 팬티는 5만 원에서 몇 백 원 빠지는 거 사 입어. 내가 오늘 죽어도 뭐, 교통사고 당해 죽든 강도당해 죽든 병원에 실려 가 빨개 벗겨놔도 절대로 기죽지 않게 비싼 팬티 사 입어. 형은 얼마짜리 사 입어? 이거 되게 중요한 거야. 죽어서는 쪽팔린 거 대책이 없어. 죽어서 팬티 못 갈아입어.
동훈
수의 입힐 건데 뭔 걱정이야 인마
기훈
마지막은 팬티야~ 수의는 다 똑같이 입는 거고 내 마지막은 내 팬티야!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막사는 것 같아도 오늘 죽어도 쪽팔리지 않게 매일매일 비싼 팬티 입고 그렇게 비장하게 산다는 거야, 어? 그러니까 형은 나 쪽팔리게 생각하지 마. 형이 나 쪽팔리게 생각하면 나 진짜 슬프다.
동훈
누가 쪽팔려한다고 그래?
기훈
근데 작은형수가 왜 몰라? 나 청소하는 거. 전화했는데 나한테 언제 영화 들어가냐고 물어보더라?
동훈
얘기할 시간이 없었어.
기훈
왜 얘기할 시간이 없어. 부부잖아. 아침저녁으로 보잖아. 형수한테 내 얘기하는 게 쪽팔렸어? 큰형이랑 청소하는 거 말하기가 쪽팔렸어? 나 쓰레기봉투에 들어가고 싶었어. 20년간 영화판에서 내가 한 일은 기다리는 거밖에 없었어. 기다리는 거. 이 나이 되도록 작은 형한테 용돈 받아 쓰고 내가 너무 쓰레기 같아서 쓰레기봉투에 들어가고 싶었어. 어디서 상품권 생겼다고 하면서 준 거 형이 사서 준 거 다 알아~ 맨날 형한테 돈 받아 쓰는 거 부담스러워할까 봐 일부러 상품권 사서 어디서 생겼다고 하면서 준 거 내가 다 알아. 내가 진짜 때깔 난 영화 만들어서 잘난 척 제대로 한번 해 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돈 벌어서 내가 형 참치 사주고 싶어. 어? 참치 사줄게
동훈
비싼 거 사 이 새끼야. 인당 9만 원짜리, 어?
동훈과 겸덕은 문자를 주고받습니다.
동훈
산사는 평화로운가? 난 천근만근인 몸을 질질 끌고 가기 싫은 회사로 간다..
겸덕
니 몸은 끼 껏 해야 백이십 근.. 천근만근인 것은 네 마음..
동훈은 사원들이 자기 뒷담화 하는 것을 듣습니다.
사원 1
나 같으면 진작 나갔다. 후배가 대표 이사되는 순간 나갔다, 나는. 야 그동안은 박 상무가 짱짱하게 버티고 있어서 그나마 바람막이해 줬지 이제 누가 있어? 아휴~ 아주 대놓고 나가라, 나가라 구박을 하는데 야 나는 진짜 안쓰러워서 못 봐주겠다.
사원 2
야 박동훈 그 인간이 나갈 것 같냐? 내기할래? 안 나가. 죽어라 버틸 걸~
사원 1
한 번 나갈 타이밍 놓쳤는데 이번에 또 놓치면 진짜 너덜너덜해져서 나가는 거야. 머리가 있으면 진짜 빨리 판단해야 된다, 응?
김 대리랑, 송 과장은 위로해주려고 한 잔 하자고 하지만 동훈은 약속 있다고 갑니다. 그 약속이 박 상무였습니다.
박 상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도준영이랑 좀 친해두는 건데. 그렇지? 윤상무처럼 살아야 돼. 자기보다 어려도 힘 있다 싶으면 바짝 기고 자기 앞서서 치고 올라가도 속없이 따라붙고 넌 너무 고까운 티 팍팍 냈어.
동훈
나보다 앞서갔다고 그놈이랑 척 난 거 아니에요. MBA까지 하고 왔는데 나보다 앞서갈 거 모르지 않았고
박 상무
그럼? 그럼 왜 척 난 건데?
동훈
그놈이 나한테 죄를 지어서지. 작년 봄이었을 거예요. 그놈이 밖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오더니 갑자기 나한테 친한 척을 하더라고요. 그때 딱 감이 왔어요. '저 새끼 나한테 죄지었다.' 어디서 내 욕을 하고 들어왔나.. 그 뒤로도 몇 번 더 친한 척 엉기고 들어왔는데 안 받아 줬어요. 기분 더러워서 대놓고 티 낸 거죠. '넌 나한테 죄지었고 난 눈치 다 깠다.' 그전에도 좋진 않았지만 그때부터 서로 대놓고 틀어진 거예요.
박 상무
아니 그러니까 결정적으로 틀어진 이유가 너한테 친한 척해서? 진짜 싫어하는구나? 한번 봐봐. 그 자식이 너한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지안은 준영에게 도청된 녹음을 들려줍니다.
녹음 속 박상무
도준영이 통화 목록 최근 석 달 치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눈에 걸리는 게 없어. 네가 보면 다른 게 보일 수도 있으니까 한번 봐봐.
녹음 속 동훈
아이 이런데 흔적 남기고 그럴 놈 아니잖아요.
녹음 속 박상무
흔적은 아니어도 어떤 연결 고리는 남겼을 수도 있어. 너랑 나랑은 그놈에 대한 정보가 다르니까 내가 놓친 거 네가 잡아낼 수도 있고 한번 봐봐. 도준영 그 자식 이번엔 반드시 끌어내려야 돼.
준영
도청도 하니?
지안
박동훈 손에 통화목록 들어갔고 거기서 자기 와이프 핸드폰 번호 발견하면 두 사람 사이 알아채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준영
내가 그렇게 허술하게 움직였을 것 같아? 거기 그 여자 핸드폰 번호 없어.
지안
사무실 번호는요? 자기 와이프 회사 번호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준영
여기로 걸어야 될 땐 공중전화로 했어. 너도 이리로 전화할 땐 공중전화로 해. 함부로 네 핸드폰으로 여기에 걸어서 흔적 남기지 말고. 입 싼 여직원은 입을 굳게 다물고 계신가 봐? 중국 갔다 오면 박동훈 부장 스캔들로 시끄러울 줄 알았더니 잠잠하던데? 왜? 작전실패야?
지안
스캔들보단 이게 더 깔끔하지 않나? 대표 이사를 물 먹이기 위한 작당 모의. 이 정도면 바로 잘릴 것 같은데
준영
불법으로 도청한 걸로 뭐 하게. 증거가 있어야지.
지안
던져 주면 증거 찾아내는 인간들은 따로 있고.
지안은 감사실 메일로 녹음 파일을 보냅니다. 할머니가 달이 안 보인다고 하자 지안은 마트에서 카트를 훔쳐 달아나고 그러다 자전거와 부딪히면서 카트 안의 물건을 떨어트려요. 마침 동훈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 홍시를 주워 지안을 쫓아갑니다. 지안을 아무리 쫓아가다가 결국 놓치지만 철커덩 소리가 들려 가보니 지안이 카트에 할머니를 태우고 나오고 있습니다.
동훈
어디 가냐 이 밤에? 이사 가냐? 떨어트린 것도 모르고. 어어어!!! 조심조심.. 괜찮아? 조심해. 조심해. 들어봐. 들어. 들어.
지안은 카트에 할머니를 태워서 동네를 돌며 달을 구경시켜 줍니다.
봉애(수화)
아까 그 사람 누구야?
지안(수화)
회사 사람
봉애(수화)
좋은 사람이지? 좋은 사람 같아.
지안(수화)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동훈은 기다렸다가 봉애를 업고 집까지 바래다주고 마중도 합니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봅니다. 동훈이 카트를 마트에 다시 반납합니다.
동훈
착하다. 간다.
동훈은 커피를 마시고 있고 지안은 비품을 정리합니다.
동훈
나와있으면 할머니는 누가 봐?
지안
친구가 들러봐요.
동훈
무슨 '지' 자야? 우리 아들 이름이 '지석'인데.
지안
'이를 지'요.
동훈
'안'은?
지안
'편안할 안'이요.
동훈
좋다. 이름 잘 지었다.
감사실에 박 상무와 동훈과의 대화 내용이 전달되고 회식이 진행이 되는데 동훈은 지안도 데려갑니다.
동훈
이지안 씨! 회식 같이 가지? 같이 가. 고기 먹어.
채령
어떤 점쟁이가 나한테 너는 불판에서 고기가 타들어가는 걸 그냥 볼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래야 인생이 편하다 그랬는데 참 팔자 못 고친다.
사원
내가 구울게
채령
아니야 됐어 언니. 새파랗게 어린애 앞에 두고 연장이나 들고 있고.. 좀 뒤집어 주겠니? 싫어?
지안
그러다가 내가 더 잘 구우면 어쩌려고요? 남 수발드는 거 다 예쁨 받으려고 하는 짓인데 그것마저 뺏어 가면 뭐로 예쁨 받으려고요?
윤 상무는 동훈을 준영한테 인사시키려고 데려갑니다. 동훈이 준영한테 대학 선배이고 입사 선배인데 말이죠. 박동훈 부장과 친한 다른 후배들은 이 상황이 참 기분이 나쁜가 봅니다. 송 과장은 술이 취해서 대표한테 부장님을 부당 대우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윤 상무와 송 과장을 말리다가 동훈은 넘어지면서 회식 분위기는 망가집니다.
동훈
오늘 네가 날 더 엿 먹인 거야? 아냐?
송 과장
저는 그게 아니란 말입니다.
동훈
그만하자.
송 과장
아니, 그..
김 대리가 술주정으로 동훈을 모욕하자 지안이 뺨으로 때리네요. 동훈은 술에 취해 걷다가 건널목을 보고 순간 나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넘어지고 힘들어합니다. 아무 소리도 없자 지안은 놀라서 달려가요. 그리고 동훈의 힘든 혼잣말을 듣고 아마 지안은 알았을 거예요. 이 사람도 참 힘들게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요.
동훈
내가 오늘은 못 죽어. 비싼 팬티가 아니야..
준영
회식도 참석해? 재미있냐? 오늘 같은 꼬라지? 박동훈 부장 통화 목록 받은 거 확실해?
지안
들었잖아요. 박 상무랑 얘기하는 거.
준영
근데 왜 감사실에서 못 찾아내. 당장 찾아내
지안
근데요. 이렇게 중요한 타이밍에 왜 유부녀를 사귀어요?
준영
넌 그냥 네 일이나 해! 오버하지 말고
지안
헤어지면 그만인데. 그러기 싫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인가?
준영
모르나 본데 남자들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여자가 유부녀야. 자기가 자기 입으로 떠벌리고 다닐 리 없는 여자. 그리고 지금 상황에선 헤어지는 것보단 계속 만나는 게 안전해. 아직 열기가 떨어지지 않은 여자 함부로 내쳤다간 더 골치 아파.
윤희는 동훈에게 사업을 시작하는 게 어떤지 물어봅니다. 자기를 위해서 일을 그만두라고 하는 거겠죠. 동훈은 회사에서 계속 굴욕을 겪자 숨겨둔 통화목록을 찾아봅니다. 통화목록을 감사실에서 못 찾았네요. 굉장히 많이 겹치는 공통된 번호를 찾는데 수신 불가 번호입니다.
동훈
착신 금지도 알겠고 수신 거부도 알겠는데 수신 불가는 뭘까?
김 대리
'수신이 불가능하다!'
동훈
그러니까~ 그 수신이 불가능한 전화가 뭐냐고
김 대리
걸어도 못 받는 전화라고요.
지안
공중전화요. 발신만 가능하고 수신은 불가능해요.
동훈은 지안의 말을 듣고 공중전화에 위치를 알게 되고 박 상무한테 전화로 알리면서 공중전화 위치로 가봅니다. 그리고 감사실에서는 동훈이 전날 통화목록 확인했던 cctv를 확인하고 박동훈 부장의 자리를 또다시 뒤집니다.
동훈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공중전화였더라고요. 하루 걸러 한 번씩은 공중전화로 둘이 통화했더라고요. 예. 여기서 멀지 않아요. 신정동요. 근처 가보면 대충 누군지 윤곽 나오겠죠.
공중전화 위치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윤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동훈이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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