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있으면 안 될까?
길친놈인 우리 장현이가 각화의 협박에 눈이 돌았네요. 어떻게 길채를 구했는데 그런 길채의 목숨을 가지고 계속 협박합니다. 저런 집착 너무 무서워요.
장현
부인을 속환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화
난 그 여자를 속환시켜 준다고 했지 네 곁에 두도록 허락한단 말은 안 했어. 이제 그 계집은 조선으로 돌아가야 해. 난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야. 내 손으로 절대 여자에게 손대지 않아. 헌데 심양에 머무는 조선 포로들에게는 운 나쁜 일들이 생기지. 이미 속환되었어도 다른 이가 나타나 종이라 우기면 도로 종이 되기도 하고 속환 문서를 잃어버려 또 도망친 포로가 되어 발목이 잘릴 수도 위조된 속환 문서를 지니고 있다가 귀가 뚫리거나 운 나쁘면 목이 잘릴 수도..
장현
(목을 조르며)
그 여자한테 손 대면 죽여 버릴 거야.
각화
네 마음 이해해. 나 역시 네가 죽는다는 상상만으로 무척 괴로웠거든. 여자를 살리고 싶어? 그럼 조선에 보내.
길채는 그동안 장현이 자신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장현의 희생을 몰랐던 것도 알게 되었죠.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당분간은 조선에 가지 않고 심양에 머무르기로요. 보통은 저주라고 그런 소리를 들으면 죄책감에 떠날 텐데 자기가 저주를 푼다며 남네요. 역시 길채입니다!!
길채
마침 잘 왔어. 조선에 보낼 서한을 쓰던 중이었거든.
량음
조선에 돌아가기로 하셨습니까?
길채
아니. 내 생명을 구해준 은인에게 충분히 보답을 해야 하니 당분간 조선에 갈 수 없다고 쓰는 중이야. 난 떠나지 않아. 이 역관에게 내가 저주라면 그 저주를 풀 사람은 나뿐이야.나리가 날 필요로 한다면 언제까지고 남아서 나리의 회복을 도울 거야.
한편, 청나라의 홍타이지의 병세는 급격히 나빠지고 이는 조선에 알려져 상황이 급박해집니다.
김자점
근자에 심양 소식이 심상치 않습니다. 칸의 병증이 깊은 듯하옵니다.
인조
병이 깊다니! 칸이 병이 나서 마음이 바뀌지는 않았겠지? 혹 명의 선박이 조선에 출몰한 것을 두고 내게 죄를 묻진 않겠지? 심양으로 끌려간 최명길에게는 별다른 기별이 없는가? 최명길이 처음에는 자기가 다 책임을 지겠다더니 어찌 아직도 목숨을 부지하고 앉아 과인이 추궁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가! 김상헌도 최명길도 청나라에 끌려가 사대부들이 또 우리 조정에 인물이 없다 할 것이니 김집, 장철에게 구언하여 그의 제자들로 우리 조정을 채우도록 하라.
임금이 신하를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저리 신하를 내몰다니요.. 못났습니다. 실제로 최명길은 속환 문제에도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며 당시 환향녀의 이혼 반대 문제로 앞장섰다고 합니다.
심기원
최명길 대감이 가니 이제 김자점이 청나라 연줄을 잡고 기세 등등 하외다. 그나저나 우리 전하께서는 참으로 무서운 분이시오. 그리고 최명길 대감을 의지하며 싸고도시더니이제 최 대감이 모든 책임을 다하고 죽기를 바라시니.. 우리 신하들은 누구를 의지한답니까? 난 불똥이 튀기 전에 조정을 떠날 것이오.
한편 서원에서는 인조의 구언 문제로 장철과 제자들 사이의 대화가 오갑니다. 이때, 장철이 한 말이 있습니다. 매일같이 종들에게 매질하는 주인집에 한 사내가 대신해서 몽둥이질을 대신해서 했는데 그 주인이 대신 몽둥이질을 하되 그 정도를 줄여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사내를 욕했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 사내는 욕먹을 줄 알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었죠. 이 사내가 저는 장현이 생각났어요. 장현이 다른 사람들은 조선인이 조선 포로를 잡는다 어쩐다 했지만 결국 조선 포로들을 잡아 청의 포로로 잡혀 고생하게 하지 않으려는 거였죠.
제자
전하께서 구언하셨습니다. 전하께서 김집과 장철의 구언은 무엇이든 소중히 받들어오라 명 내리셨다 하옵니다.
장철
전하께서는 구언을 바라시나? 부족한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단 너희들은 조정에 들어 전하를 돕도록 하라.
제자
하지만 스승님께서 굳게 거절하시는데 어찌 저희가...
연준
그렇습니다. 이번에 명과 몰래 교류한 일로 최명길 등 대신들이 청나라로 끌려갔습니다. 전하께서 또다시 오랑캐에 충신들을 내주었습니다. 그런 조정에 들 수 없습니다.
장철
매일 같이 종들에게 매질하는 부잣집에서 새 마름을 구하였다. 다들 사악한 주인 밑에 마름 노릇 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으나 한 사내가 나서서 주인 대신 몽둥이를 잡고 매질하되 그 정도를 줄여주였다. 이제 종들은 주인 대신 마름에게 욕을 해댔으나 진정 백성에게 도움이 된 자는 마름자리를 외면한 자들이나 아니면 욕먹을 줄 알면서도 몽둥이를 쥔 그 사내였겠느냐?어느 것이 진정 선비의 길이겠느냐? 대신은 임금의 손과 발이요. 간관은 임금의 눈과 발이거늘.. 지금 전하의 손과 발이 다 잘리고 사방이 막혔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가라. 가서 전하의 눈과 귀가 되거라.
장현과 길채가 걸으며 길채는 옛 생각이 납니다.
과거 길채
역시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군? 나랑 이렇게 단 둘이 있는데도 볼이 붉어지거나 말을 더듬지 않아. 비혼인가 뭔가로 살려는 이유가 사내구실을 못해서라더니~아니오? 그럴 리가 없는데?
길채
예전에 나.. 참 어리석었지요?
장현
참.. 곱기도 했지. 아무래도 예전 능군리에서 들었던 소문이 맞는 모양이야~ 이 이장현이랑 단 둘이 있으면서도 말을 더듬거나 떨지를 않아. 소문에는 꼬리 아흔아홉 개 달린 백여우라더니 틀림이 없어
(끌어안으며)
이젠 여기서 나랑 같이 있으면 안 될까? 여기가 싫거든.. 어디든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당신 남편은 당신을 버렸어. 당신이 심양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러니 이제는 의리를 지킬 필요가 없지 않소. 그러니 이제는..
길채
종사관 나리께 무슨 사정인지 얘기를 듣고 난 연후에..
장현
그렇지. 당신에겐 남편이 있었지.. 남편도 아비도 동생도 있지...
길채는 아마 지금 본인이 유부녀인 게 제일 마음에 걸릴 거예요. 전 그 마음이 뭔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요. 옆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길채
예. 제겐 아버지도 남편도 동생도 있지만 생명의 은인도 있습니다. 나리를 위해서라면 저 역시 제 목숨도 아깝지 않아요.
장현
하지만? 나를 사랑할 수는 없다는 건가? 당신이 나를 대신해 죽어주길 바란 적 없소. 내가 바라는 건..
길채
나리.. 저는...
표언겸
이보게 이 역관! 이 역관!!
장현
뭐가 그리 급해서! 무슨 일이오?
표언겸
칸이 죽었네..
조선에도 알려졌습니다. 비상이네요.
인조
칸이 죽다니? 허면 이제는 누가 그 뒤를 잇는단 말인가?
김자점
이제 6살 된 칸의 아들이 황위에 올랐으며 구왕 도르곤이 섭정왕이 되었습니다.
인조
이제 천하가 도르곤의 세상이 되었다는 말인가?
저는 교과서로만 봤었는데 한 나라의 황제가 죽은 게 이렇게 크게 영향을 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장현
예. 이제 천하는 도르곤의 것입니다. 허나 도르곤은 직접 황위에 앉을 힘이 없으니 어린 아이를 앞세워 고작 섭정왕에 만족해야 했지요. 도르곤은 아직 청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이전 황제가 황위에 앉자마자 도르곤의 어머니를 순장시켰듯 도르곤 역시 자신의 세력을 다지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소현
허면 우리 조선은?
조선에서 인조 역시도 고민입니다.
인조
허면 도르곤이 우리 조선을 어찌할 것으로 보이는가? 병자년 나를 죽이고 조선에 오랑캐왕을 앉히겠다 주장한 자들도 있었다. 이제 그런 자들이 권세를 잡으면 어찌하는가!
소현
병자년에 청나라 친왕들에게 나누어주자는 자들도 있었다. 만일 그런 자들이 도르곤에 붙어 권세를 잡으면 이제 조선은 어찌 되는가?
장현
도르곤이 누구를 곁에 두고 누구를 처낼지 이제 곧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옵니다. 앞으로 몇 달간 도르곤이 손을 내미는 이가 앞으로 도르곤과 함께 할 이들이지요. 그러니 우리도 움직여야 합니다. 소인 용골대 장군을 만나 도르곤의 기색을 살펴보겠습니다.
장현(만주어)
세자 저하께서 특별히 용골대 장군을 위해 만드신 불상입니다.
용골대(만주어)
날 위해 세자께서 직접..?
장현(만주어)
조선에서는 남편이 관직에 나갈 때 여인들이 돈을 들여 무사태평을 비는 불상을 만들곤 합니다. 장군도 역시 불안하시지요?
용골대(만주어)
너 따위가 뭘 안다고!
장현(만주어)
불안하신 거 압니다. 이제 구왕께서 섭정왕이 되셨으니 장군께서 숙청되실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리는 안될 일이지요. 대청이 조선을 얻는 것은 누구 공입니까? 조선을 얻는 것은 용골대 장군과 또 섭정왕의 덕분이지요. 또 그 사실을 잘 아는 분이 우리 세자 저하십니다. 우리 세자께서는 장군을 믿고 또 지지하지요. 병자년에 어떤 친왕들은 조선을 쪼개 자기들이 통치하겠다 하였고 어떤 자들은 조선왕을 죽이고 직접 다스리자 하였으나 오직 섭정왕과 용골대 장군만이 조선의 사직을 보존케 해 달라 청하셨다지요?
용골대(만주어)
그것은..
장현(만주어)
이제 기억나십니까? 해서 장차 우리 세자 저하께서 임금이 되시면 조선에서 나오는 모든 물산의 이권은 오직 용골대 장군과 섭정왕만을 통할 것입니다. 조선은 용골대 장군과 함께, 용골대 장군은 섭정왕과 함께, 섭정왕과 장군 그리고 우리 조선이 함께 가는 겁니다.
시간이 지나 도르곤이 세자와 세자빈을 조선에 왔다가는 것을 허락합니다. 굴욕이네요. 한 나라의 세자와 세자빈이 자기 나라를 왕래하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다니요. 근데 이를 환영하기는커녕 인조는 경계합니다.
장현
경하드리옵니다.
강빈
허면 어머니를 뵐 수 있는가?
소현
자네 덕분일세.
장현
아니옵니다.
강빈
아니야. 일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갖은 뇌물을 주어도 날 조선에 보내주지 않더니 이번에는 자네가 도르곤의 마음을 돌려 내가 어머니를 뵙고 오게 해주지 않았는가.
장현
이제 드러난 셈이지요. 도르곤이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
용골대가 황녀가 지금 조선 포로들로 협박하고 방해하고 있다며 장현에게 알립니다.
장현(만주어)
장군을 뵈옵니다. 세자빈께서 조선에 다녀오도록 손 써주신 일이 고맙다며 백면지를 보내시고자 하니..
용골대(만주어)
네 놈 도대체 황녀에게 왜 밉보인 거냐? 섭정왕은 황녀가 자기 사람이 돼주길 바라고 있어. 황녀가 왕가의 여인들을 장악하고 있거든. 헌데 섭정왕이 황녀에게 손을 내밀자 황녀가 두 가지를 요구했어. 첫째 몽골로 시집가지 않겠다. 둘째 조선의 도망한 포로들을 잡아들일 수 있는 권한을 달라. 황녀가 네가 그간 포로들을 팔아 내게 돈을 준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섭정왕이 허락한다면 황녀는 너부터 뒤질 거다. 그럼 내 꼬리가 잡혀 이 뒷감당을 어찌할 셈이냐? 황녀가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거지. 날 노리는 건가? 아니면 그저 내가 재물을 나누길 바라는 건가?
용골대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장현은 황녀를 만나러 갑니다.
장현
왜 이러는 겁니까? 원하는 게 뭐예요?
각화
너! 내가 원하는 건 너야. 하지만 네가 내게 오지 않으면 너랑 네가 데리고 있는 조선 포로들 모두 묻어버릴 거야. 네가 그 여자를 얻기 위해 포로들을 다 묻어버리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
조선 포로들을 버릴 수 없는 장현은 한참 고민을 하고.. 조선에 다녀오는 세자 편에 안전하게 길채를 보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길채에게 하죠..
장현(만주어)
섭정왕께서 이를 두고 보겠습니까?
용골대(만주어)
모르겠는가? 조만간 심양관이 점령된다. 명나라가 무너지고 있어. 이제 곧 청은 북경에 입성하고 중원이 청의 것이 된단 말이다. 해서 조선 포로 따위 황녀에게 던져주어도 섭정왕은 상관치 않는다. 포로들을 죽이든 살리든 관심 없어. 이제 곧 조선 포로는 잊힐 거야.
길채
보자고 하셨다면서요? 바쁜 일은 다 끝나셨습니까? 나리.. 일전에 그 일은.. 그러니까...
장현
도르곤이 세자께서 조선에 다녀가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부인도 그 편에 조선으로 돌아가십시오. 세자께서 조선으로 돌아가는 길에 돌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길채
하지만 나리 병이 다 낫지 않았고...
장현
이제 내 병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부인 병간호는 필요 없어요.
길채
하지만..
장현
부인이 한 말을 잊었습니까?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그러니 내게 마음의 빚 같은 건 가질 필요 없어요. 나는 부인께 매달려도 봤고 부인 때문에 죽을 고비도 넘겨봤어요. 원 없이 다 해봤으니 이제 내 마음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그러니 돌아가시오.
길채
나리.. 칸이 죽어.. 골치 아픈 일이 많으신 게지요?
장현
게다가 매 번 나를 밀쳐내는 부인에게 질렸어요. 예!! 이제 아주 싫증이 납니다. 그러니 돌아가시오. 제발
길채
싫다면요? 만약 내가..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장현
서방까지 있는 여인이 염치를 모르시오!
장현에게 상처를 받는 말을 들었지만 장현을 나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조선에 돌아가라는 말을 그 말 그 자체를 받아들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길채
조선에 가자. 그걸 원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
길채는 세자빈에게 조선에 같이 데려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있었던 날들이 가장 기쁜 날들이었다 말합니다. 아마 그랬을 거예요. 길채는 장현과 소소하고 하찮은 그런 일상들을 원했으니까요.
강빈
이번에 우리가 조선에 다녀오는 길에 같이 조선으로 가고 싶다고?
길채
예. 조선에 가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빈
그래야겠지. 우리 원손을 구해준 은혜는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가 없어. 장차 세자 저하께서 보위에 오르시면 내 반드시 그 은혜를 갚겠네.
길채
소인은 이미 크게 받았습니다. 이곳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보낸 시절이 소인 생애 가장 큰 기쁨이었사옵니다.
그렇게 장현에게 안녕을 고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겠다고 말하죠. 또다시 이별입니다.
길채
나리. 안에 계십니까? 세자빈 마마께 말씀 올렸습니다. 이번 세자빈께서 조선에 다녀오시는 길에 저도 조선으로 돌아갑니다.
장현
잘 되었소. 내 일이 많아 배웅은 못할 것 같습니다.
길채
나란 여자 참 지긋지긋하지요? 어쩜 나리께 이리 폐만 끼치는지 부끄럽고.. 한심하고..
장현
나는 한 번도 그리 생각해 본 적 없소. 그러니 조선에 가거든 이 심양에서 겪은 고초 따위는 잊고 잘 살아주오. 요란하고.. 화려하게.. 길채답게
길채
예! 꼭 그리 살겠습니다. 목표가 생겼습니다. 다시는 나리께 해가 되고 싶지 않아요. 예! 조선에 돌아가서 보란 듯이 씩씩하게 잘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미안합니다.
연락이 편한 요즘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예전에는 연락 한 번 하기 정말 어려웠죠.. 그래서 더 애달프고 아픕니다.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 두 사람의 이별이니까요..
장현
잘 가시오. 가서 꽃처럼 사시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뿐입니다.
아들을 믿어라 인조야!
인조
이 전 칸은 세자를 끌고 간 후 수년이 지나 서야 조선에 다녀오게 하였는데 도르곤은 어찌 섭정왕이 되자마자 세자가 조선에 다녀오도록 허락하였는가!
김류
세자빈의 아비가 죽었으니 문상하게 해 달라 간곡히 청하여...
인조
그러니 도르곤이 세자의 청을 들어주었느냐는 말이다!
내관
전하! 세자 저하께서 도성에 드셨나이다.
인조는 그 머나먼 타국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들내외를 문전박대하죠..
내관
저하.. 전하께서 편찮으시어 오늘 보지 못하신다 하시니.. 돌아가서 기다리시면..
소현
전하 소자 왔나이다. 문후 올리나이다.
인조
알았다.
장철은 궁 안에서 흉흉한 소문이 있다는 것을 제자들을 통해 알게 됩니다.
제자 1
전하께선 세자빈이 사가에 들러 혼자되신 어머니를 뵙고 아버지 위패 앞에 곡하는 것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연준
그뿐 아니라 지금 내사옥에서 궁 안 저주 사건을 조사한다며 매일같이 궁인들을 고신 한다 하니..
장철
궁 안 저주 사건? 풍문을 듣고 하는 소리냐?
연준
내사옥에서 궁인을 고신 한다는 소문은 진즉부터..
장철
소문의 뿌리는 추적해 봤느냐? 본시 간관은 세간의 풍문도 전하께 전해드려야 한다. 허나 허무맹랑한 말을 확인도 안 하고 옮겨서야 어찌 말에 무게가 실리겠느냐?
연준
예 스승님. 제가 반드시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겠습니다.
길채가 드디어 집에 돌아왔어요! 은애가 원무에 대해 둘러대지만 길채는 알고 있죠. 영채는 왜 길채가 몹쓸 짓 당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한 것일까요? 참 마음 아프네요.
길채
종사관 나리는 요즘 본가에서 지내신다고?
은애
응. 너를 데리러 심양까지 가셨다가 도둑을 만나서 돈을 다 뺏기셨다지 뭐야.. 마침 다시 가려고 준비 중이셨어
길채
그랬구나..
영채
그런데 언니... 청나라에서 오랑캐 놈이 언니한테 몹쓸 짓하지 않았지?
은애
은채야 좋은 날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길채가 누군데. 꿈만 같아..
영채
우리 언니가 어떤 사람인데
원무는 새로운 여자를 얻어 임신까지 했네요. 근데 왜 아무 일도 없었는지 묻는 건가요.. 남편이잖아요.
원무
참으로 부인이 맞습니까?
길채
저 여인은 누구입니까?
원무
걱정 마세요. 내가 다 수습하지.. 그전에...그곳에서...부인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겠지?
그 누구도 환영해주지 않네요. 남편도.. 가족도.. 나라도..
남자 1
포로로 잡혀갔다가 험한 꼴 당하고 돌아왔대
남자 2
무슨 꼴?
남자 1
아, 그걸 몰라서 물어?
여자 1
용케도 살아왔네
조선 여자들 망신은 다 시키고
여자 2
그러게나 말이여
남자 1
낯짝도 두껍다
종종
방금 뭐라고 그랬어요? 뭐라고 했냐고! 어디서 망할 입을 놀려!
남자 1
뭐, 이 오랑캐 묻은 더러운 년이 어디서 감히 이게
길채
개 짖는 소리에는 대꾸하지 말랬지 (싸다구!)
영채는 따져 묻네요. 잘못은 길채가 한 게 아니야 영채야
영채
내가 형부랑 얘기해 봤는데 형부는 언니랑 이혼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대. 그런데 그전에 대답이 듣고 싶대. 아무 일 없었다면 그냥 그렇다고 말만 해주면 되잖아. 언니!! 정말 오랑캐한테 무슨 일을 당하기라도 한 거야?
은애
영채야!
아버지는 길채의 목을 조릅니다. 길채가 평생 다른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기가 힘들었나 봅니다.
길채 부
길채야.. 나는 너를 얻고 세상을 다 얻었다. 너를 키우며 세상 기쁨을 모두 얻었어. 내 귀한 딸.. 내 금지옥엽.. 헌데 이제 네가 평생 지옥 속에 살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으냐. 이 아비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이를 어찌... 아니다. 아비가 도와주마. 남은 평생 치욕스레 살지 않도록 이 아비가 도와주마. 조금만.. 조금만.. 너의 결백을 내 손으로 증명해 주마. 네가 다시 욕을 당하지 않게
길채
아버지.. 아버지...
결국 이혼하는 길 채와 원무입니다. 하지만 이혼 사유는 길채가 오랑캐에게 욕을 당해서가 아닙니다. 길채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줘서입니다. 길채가 이혼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길채가 이혼을 한 겁니다. 그게 정말 중요했습니다. 저에게는
원무
부인
길채
여기서 만든 장도 몇 개는 제가 가져가서 호구에 써도 되겠지요?
원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길채
예.. 심양에서 오랑캐에게 팔려갔었습니다. 거기서 참기 힘든 치욕을 당했지요. 이장현 나리도 만났습니다. 나리의 도움으로 속환되었습니다. 오랑캐한테 욕을 당한 건 제 잘못은 아닙니다. 그 일로 이혼을 요구하셨다면 전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심양에서 이장현 나리께 마음을 준 일은 미안합니다. 해서 이혼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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